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쇼와 덴노/다른 나라와의 관계 (문단 편집) == 남북한과의 관계 == 남북한 막론하고 한민족 모두에겐 사실상 악연이 깊을 대로 깊은 관계로 [[일제강점기]]의 폭정과 억압통치로 상처와 비극을 그리게 하였고, [[일제강점기|일제]] 말기 때 [[제2차 세계대전]]에도 개입하면서 무고한 조선 청년 및 처녀들을 [[학병]]과 [[정신대]], [[일본군 위안부]] 등으로 징집시키면서 역사적으로 이들에게 '''[[생지옥]]으로 인도한 악인이자 [[마신]]'''으로 낙인찍혀 악평을 받아왔고 민족 차원에서 비난과 비판대상이 되어 왔다. 이러한 제도를 실시한 원흉은 당시 총독이었던 [[고이소 구니아키]]였지만, 애당초 조선총독이 내각이 아닌 천황 직속인 데다 쇼와 덴노 역시 이를 허가했으니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원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. 1984년 [[전두환]]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방일(訪日)하여 쇼와를 만난 적이 한 번 있었지만, 정작 쇼와는 역대 덴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방문한 사례나 경험이 없다. 그 이전에 [[일본]]의 식민지였던 때도 방한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. 대신에 동생 [[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]]가 1936년 한국을 방문한 적은 있으며, 아버지 [[다이쇼 덴노]]도 황태자 시기에 방한한 적은 있다. 사실 본인이 방한하고 싶어도 한국 애국단체와 순국선열단체, 그리고 민주 운동권 세력들이 강력히 반발했을 것이기 때문에 어려웠을 것이다. 이미 1982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파동이 터진 데다, 그 이전에도 저 멀리 떨어진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조차 격한 반발을 맞이해야 했으니 물건너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. 한편 [[전두환]] 대통령과 함께한 만찬에서 쇼와는 '지난날 자신의 지배하에서 양국간 불행한 과거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, 다시는 되풀이 되어선 안 된다.'는 ~~뻔뻔한~~낭독사를 읽었다. 더 나아가 “지난 6~7세기 일본의 국가 형성기에 귀국의 많은 지도를 받았다.”며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하였다. 1989년 1월 7일에 쇼와 덴노가 사망한 날, [[노태우]] 대통령이 [[http://imnews.imbc.com/20dbnews/history/1989/1817734_19354.html|조전을 보내고]] 정부는 [[강영훈]] 국무총리를 조문사절로 보낼 것을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9010700209201014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89-01-07&officeId=00020&pageNo=1&printNo=20699&publishType=00020|고려하였으나]] 재야 민주단체와 독립운동 유관단체들의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9022200209215010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89-02-22&officeId=00020&pageNo=15&printNo=20737&publishType=00020|거센 항의를]]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9022300289111010&editNo=3&printCount=1&publishDate=1989-02-23&officeId=00028&pageNo=11&printNo=242&publishType=00010|받아야]] 했다. 우여곡절 끝에 강 총리는 2월 23일에 장례식 참석을 위해 방일했다. 북한 측 여론은 당연히 비난 일변도였는데, 쇼와 덴노 사후 [[조선중앙통신]]이 쇼와를 '전범'이라고 규정함과 동시에 다케시타 총리의 담화에 대해서도 피해국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는 도전이자 모욕이라고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9011700289104009&editNo=3&printCount=1&publishDate=1989-01-17&officeId=00028&pageNo=4&printNo=211&publishType=00010|비난했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